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조선참모실록' - 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

조선참모실록

<조선참모실록>

 

군주의 경영철학과 여론의 향배를 정확하게 살펴 국정을 슬기롭게 이끌어간 참모 8인의 리더십!


① 맹사성 -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온유의 리더십

맹사성은 군주를 모실 때와 상하 좌우의 신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결코 겸손과 온유, 절제와 조화를 잊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대인관계 소통방식은 윗사람에게는 정직하게 이야기하되 겸손을 지키고, 아랫사람에게는 정과 사랑을 담되,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이 원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② 이준경 - 시련을 통해 꽃피운 미래예측의 리더십
이준경은 명종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조선 조정의 외척 발호, 곧 명종의 외숙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의 발호를 종식시키고 사림 정치를 시작하게 했으며, 후사 없이 승하한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를 즉위케 함으로써 조정의 안위를 튼튼하게 세웠다. 또한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당쟁과 전란의 피해를 정확하게 예견했다.

③ 이황 -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준 물러섬의 리더십
이황은 34세에 벼슬을 시작해 70세에 사망할 때까지 140여 직종에 임명되었지만 무려 일흔아홉 번이나 사퇴하는 물러남의 극한을 선보였다. 그의 사상과 철학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퇴계는 사상과 철학을 주장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워둠’, ‘내려놓음’이라는 보기 드문 행동으로 세상과 대화하려 했다.

④ 이원익 - 정적들도 감싸 안은 관용의 리더십
이원익은 놀림을 받을 정도로 왜소했으나 그가 남긴 업적은 너무도 크다. 그는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백성의 곤궁한 삶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했고, 성실·정직·근면·검소를 온몸으로 실천했으며, 속 좁은 신료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반대파들에게 끊임없이 비난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을 관용으로 껴안았다.

⑤ 이항복 - 전란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달랜 해학의 리더십
이항복은 웃음과 충성으로 선조를 모셨고, 아래로는 전란의 고통을 겪고 있던 만백성을 사랑으로 껴안았다. 적지 않은 고초를 겪고 외로움을 많이 탔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조선의 철밥통 관료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그는 위기가 올 때마다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라며 늘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했다.

⑥ 김육 - 한평생 대동법만 외친 집념의 리더십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하지만 김육은 그런 부류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되 결코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조선 후기 민생경제 최후의 보루로 대동법 시행에 목숨을 건 경제 관료이자 학자였으며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다닌 현실주의자였다.

⑦ 최석정 - 비난을 이겨내고 터득한 실용주의 리더십
최석정은 초년 시절 주화론자인 할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명분론자들의 숱한 비난과 모욕을 받으며 살았다. 그는 이런 모진 마음고생을 잘 털어내고 한평생을 올곧은 공직자로서 탕평과 균등한 인재 선발,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한 진휼 정책의 실시, 조정의 혁신과 규제의 완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⑧ 박규수 - 시대 흐름을 읽어낸 변화수용의 리더십
박규수는 20년에 가까운 칩거와 고통의 세월을 이겨내고 개화와 실학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조선 지식인을 이끈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다. 혼란의 조선 말기, 박규수는 격변기를 정면으로 대응하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스스로 변화를 수용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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