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3일 목요일

전자책 산업, 얽힌 실타래 풀자 (전자신문 기사)

 

전자책(출판)산업 진흥과 관련한 정책 수립시 대학교수 분들의 의견 수렴에 대해 개인적으로 회의적인 느낌을 가진다. 이유는 한가지, 업계의 분위기를 너무 모르고 원칙적인 이야기와 오랜 시류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하기 때문이다. 또, 트렌드에 둔감하기 때문에 친분이 있는 곳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전부를 아는 것처럼 의견을 피력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암튼 개인적인 생각이다. 위원회-TFT 구성시 늘 나오는 그 분들... 업계에 그렇게 인물들이 없는지 의문이다.  

 

 

//상//

 

애플 ‘아이패드’로 세계 전자책(e북) 콘텐츠 시장이 들썩인다. 그러나 ‘IT강국’인 우리나라에는 전자책(e북)이라는 ‘대어’가 입질도 없는 상황이다.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지지부진하고 단말기는 ‘가뭄에 콩 나듯’ 팔린다. 지지부진한 시장을 놓고 책임 공방만 한창이다. 전자책 산업 현황과 과제,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집중 분석해 본다.

지난달 26일 문화부 브리핑 룸에서는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전자출판 육성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출판계 인사도 브리핑에 배석했다. 육성 방안과 관련해 산업계 이해를 반영했다는 정부 의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전자출판 정책연구위원인 이용준 대진대 교수는 육성 방안에 대해 “20회 이상 회의를 열었고 수차례 초안 수정과 의견수렴 과정을 걸쳤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바람과 달리 불만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정부 육성 방안은 콘텐츠 업체만을 너무 배려한 것 같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 인사는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전자책 육성 방안을 내놓는 뜻깊은 자리였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했다는 후문이다. 전자책 산업계는 사분오열이며 정부는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아이패드로 전자책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국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단말기 종류가 늘어나고 가격도 크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수요는 요지부동이다. 미국에서 지난해 판매된 전자책은 대략 300만대. 올해 보수적으로 잡아도 500만대를 넘길 예정이다. 국내는 천양지차다. 산업계는 정확한 집계는 힘들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1만대를 약간 넘겼을 것으로 예측했다. 콘텐츠 부족만을 탓하기에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산업계가 진단하는 전자책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불신’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콘텐츠, 표준포맷 등 모두 현안이지만 정작 중요한 배경은 업계가 서로 믿지 못하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불신의 시작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9년 120여 출판사는 전자책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위해 ‘북토피아’를 설립했다. 북토피아는 1200개 공공과 학교 도서관에 콘텐츠를 납품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출판사 미지급 저작권료 58억원과 부채 95억원을 떠안고 주저앉았다. 10년간 120억여원의 비용을 들여 만든 12만권의 전자책 중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 건 고작 20%에도 못 미쳤다.

북토피아 사태는 출판계가 몸을 움츠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북토피아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북토피아 때문에 출판사는 유통사를 쉽게 못 믿는다”고 말했다. 출판사가 다시 유통업체에 휘둘릴까 두렵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전자책 콘텐츠 업체를 표방하는 한국출판콘텐츠(KPC)가 “투명한 요금 체제가 정착돼야 한다”며 독자적인 복제방지 시스템(DRM)을 채택하는 배경도 ‘불신’에 근거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전자책 시장도 과거 통신사업자와 음반사 관계처럼 불합리한 수익 구조가 정착될까봐 불안하다”고 전했다.

유통업체도 할 말이 많다. 북토피아는 출판사 출자로 설립됐다는 것. 유통업체 관계자는 “KPC 최근 행보로 볼 때 제2의 북토피아 사태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용 단말기가 6종이나 출시됐지만 읽을 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소비자 불만은 꾸준히 이어진다. 자칫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시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중호 북센 본부장은 “출판사는 저작권 보호나 제대로 가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유통업계는 업계에 맡기라고 말하는데 신간이 나오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단 소비자가 전자책에 익숙해지도록 유통과 콘텐츠 업체가 불필요한 견제를 버리고 힘을 모으는 게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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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킨들’이 성공한 배경은 단 한 가지였다. 저작권자-출판사-소비자로 이어진 ‘지식 생태계’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일반 서점에서 구입하는 책 이상의 가치를 주었다. 불편함과 가격 부담 문제를 해결했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해 원하는 책을 내려받고 콘텐츠 가격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게 제공했다. 출판사와 저작권 업체에도 분명한 실익을 안겨 주었다. 책 수익금의 75%를 출판업체에, 나머지 25%를 저작권자 몫으로 모두 넘겼다. 책 판매 대금을 포기하고 단지 전자책 단말기 판매 수익만을 챙기겠다는 아이디어는 미 전역 대학교를 중심으로 ‘수요 몰이’에 성공했다.

조만간 국내 시장에 출시되는 애플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다. 단말기가 가진 혁신성도 관심사지만 아이패드 중심으로 형성되는 튼튼한 생태계가 더 위력적이다. 단말기를 중심으로 유통 플랫폼이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탄탄한 비즈니스 수익모델이 진짜 경쟁력이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아이패드와 아이폰은 플랫폼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무기”라며 “국내 업체가 아무리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과 콘텐츠 제공업체 모두에 매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자책 분야에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또 하나의 배경은 후방산업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에서 무선데이터·콘텐츠 이어 IPTV까지 다른 산업과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전자책 산업도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 뉴미디어로 기존 출판산업과 동반상승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도 따지고 보면 생태계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문제는 생태계 구축을 위한 출발점이 단말기라는 점이다. 단말기 보급과 전자책 시장 활성화는 ‘닭과 달걀의 논리’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국내에 보급된 전자책 단말기는 6종 정도. 가격은 30만원대 후반에서 20만원대 초반까지 천차만별이다. 소비자가 선뜻 단말기를 구입하려면 값을 더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나 쉽게 가격을 낮출 수 없는 구조다. 부품 가격이 거의 정해졌기 때문이다. 먼저 패널은 대만 PVI 제품으로 부가세를 포함해 10만원에 조금 못 미친다. 전자잉크 구동 부품은 3만원 안팎이다. 엡손이 거의 독점 공급하므로 다른 제품을 찾기 어렵다. 여기에 기타 부품과 금형비, 인건비까지 합치면 제조원가는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현실적으로 20만원 이하로 떨어지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업계는 대안으로 단말기 가격 인하를 위한 세제 혜택을 기대했다. 최대봉 인터파크INT 도서부문 대표는 “단말기 가격은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이라며 “단말기 면세도 고려할 만한 정책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중호 북센 미래사업본부장은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책이 빨리 전자책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읽을 수 있는 단말기 시장이 활성화돼 일단 소비자가 전자책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DRM과 같은 세부표준 수립도 중요하지만 전후방 산업을 고려해 전자책 유관 산업이 유기적으로 만날 토대 구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박창규기자 bjkang@etnews.co.kr / 기사등록일 20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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